Home > RHT소식 > RHT소식


[2013년 03월 04일 14시 11분]

당사 정지홍 대표의 정부의 환율정책에 관한 월간중앙 3 월호 기고문 전문입니다. 고객사 관계자들의 많은 열람 바랍니다. 

2013.02.17 201303호 [110] 인쇄하기
 
기획특집 - 한국경제는 ‘고환율 중독’에 걸렸다!
‘엔低’ 쓰나미가 몰려온다②
정지홍 RHT 대표이사

 


세계 각국의 경상수지가 환율을 좌우한다고 믿던 순진한 경제학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거꾸로 환율이 경상수지·물가 등 경기를 좌우하는 시대다. 한국의 삼성·LG가 뜨고 일본의 소니·엘피다가 저문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환율이다. 

한국 전자산업이 살고 일본의 전자산업이 죽은 것은 한국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기술평준화를 이뤄낸 측면도 있지만, 지난 몇 년간의 고환율이 가격 경쟁력이라는 날개를 달아준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 역시 해외시장에서 품질은 아직 일본차나 독일차에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소비자 인식에도 불구하고 고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으로 세계 5위의 자동차 브랜드로 뛰어올랐다.

자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 환율에 따라 살고 죽는 상황에서 모든 나라가 환율에 사활을 건다. 자국이 하면 환율관리 혹은 환율정책이고 경쟁국이 하면 환율조작이라고 달리 부를 뿐이다. 경제상황에 따른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세계 각국의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2월 15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78.50원으로 산업별 수출마진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환율인 1067~1104원을 넘어서거나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베노믹스’의 노골적인 엔저공세가 한국경제에 이중의 타격을 입히고 있다. 대(對)달러 강세가 한국의 수출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상황에서 많은 산업분야에서 한국과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노골적인 엔저는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 달러의 통화량은 2012년 10월 기준으로만 전년동기보다 7.3% 증가할 정도로, 양적완화 이후 계속 늘어나서 달러화 가치가 올 들어서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1050원을 위협할 정도로 하락했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통화량에 비해 달러 약세의 속도를 늦춰왔지만, 앞으로도 미국이 유동성 회수에 나서기 전까지는 환율은 오를 일보다는 내릴 일이 많은 상황이다.(<그래프1> 참조)

엔저는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찍어내겠다”는 아베 내각의 출범과 함께 본격화됐다. 아직 실제 돈은 풀리지도 않았지만, 일본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만으로 3개월 전에 1370원대이던 엔화가 현재 1150원대로 급전직하했다. 한국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통화 사이에서 원화는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다.

MB정부 환율관리 실수로 위기상황 대응력 약화


 
한국의 수출위주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달러와 엔화 두 통화가 요동치는 이때, 정부의 환율개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현재 출렁이는 환율시장과 유사한 과거 정부의 환율정책에서 교훈을 찾아보자. 

우선 1990년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 이후 국내외 여건의 차이는 있겠지만, 환율이 요동치던 때는 두 차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에 해당된다.

먼저 IMF 외환위기는 한보·기아·대우·해태 등 대기업들의 분식회계와 부도가 빌미가 되어 한국경제를 더는 못 믿겠다는 미·일이 한국에 제공한 차관 연장을 거부하면서 비롯됐다. 빚과 분식회계로 유지해온 기업들, 부실대출을 해주던 은행, 투자금융회사 등 제2금융권의 과도한 외화차입 등 정경유착, 차관경제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곪아터지면서 국가부도라는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부도를 막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된 김영삼 정부 말기와 김대중 정부 초기는 환율문제에서 물을 끌어다 불을 끄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IMF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김대중 정부는 IMF와의 협의에 따른 제약(외환보유고 확충 등)으로 환율에 관한 정부재량이 많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는 국제경제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는 점에서 환율문제에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이 비교적 덜했던 때다. IMF 때의 외환위기가 외환관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경제의 모든 근본적인 부실이 동시에 터지면서 벌어졌다는 점과 그 이후의 정부는 환율관리에 자의든 타의든 특별한 역할이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상황과 연관지어 교훈을 찾기는 어렵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의 금융위기에 따른 외환위기는 실물경제보다는 자본시장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동안 유래가 없던 유동성 공급으로 외환시장의 변화가 시작된 현재의 상황과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초기의 환율정책에서 교훈을 찾아 새 정부의 환율정책의 기조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의 환율관리를 되돌아보자. 정부의 가장 큰 역할과 임무는 환율의 방향성을 인위적으로 정하기보다는 환율의 변동성을 통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고환율이라는 환율 방향에 집착해 환율의 변동성을 스스로 확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고환율 기조의 선택’은 수출경기 부양과 외환보유고 확보 등의 당위성이 있었다. 

하지만 방향성을 강조하다 변동성을 확대하는 것은 환율관리의 기본에 반하는 개입이었다. 그 결과 이후 리먼사태를 맞아 스스로 확대한 변동성을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낭비하고 말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서서히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2008년 3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환율시장에 불을 당긴다. 먼저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원화 강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환율정책과 상반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발언으로 고환율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얼마 뒤 강 장관은 “현재 경상적자 기조를 감안해 환율이 어디로 가야 할지는 자명하다”는 결정적 발언을 했다. 당시 환율 추이를 보면 강 장관 취임 당시 937.30원하던 원·달러 환율이 취임 후 12거래일 만에 1021.70원까지 치솟았다. 장관의 계속되는 고환율 강경발언으로 인해 환율이 2주 만에 무려 9%포인트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환율시장에서 ‘9%’는 엄청난 수치다.

고환율 기조를 추진하더라도 시장의 반응을 보며 환율변동의 폭을 조절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영향력이 큰 한국시장에서 정부 최고책임자가 직접 나서 12거래일 동안 9%포인트 상승이라는 환율시장의 급변을 만들어낸 것이다. 같은 시기 다른 나라의 대달러 환율변화와 비교하면 리먼사태의 전조로 다른 나라의 환율이 상승으로 방향을 틀기 전에 오직 원·달러 환율만이 급격히 위쪽으로의 변동성을 키웠음을 알 수 있다.(<그래프2> 참조)

급격한 환율상승에 강 장관은 “최근 환율상승 속도는 우려스럽다”는 발언으로 2거래일 동안 환율을 15.2원 떨어뜨리는 등 속도조절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는 이미 변동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단기변동성마저 확대하는 우를 범했다. 짧은 기간에 급격히 오른 환율을 차라리 내버려뒀더라면 시장은 서서히 변동성을 줄여 가며 적정환율을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 후로도 하루는 고환율 기조를, 하루는 상승폭을 걱정하는 발언을 번갈아 던짐으로써 계속해서 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키웠다.

그러면 정부가 스스로 키워놓은 변동성은 리먼사태 이후 한국경제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일단 시장 참여자들이 환율이 급격히 오르내리는 변동성을 체감한 상태에서,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라는 촉매제가 발생하자 시장의 관성이 작동해 급격한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리먼사태 때 원·달러 환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상승을 보인 이유다.


 


리먼사태 때 환율방어에 퍼부은 엄청난 돈

미국발 위기가 올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이제 커져버린 변동성에 자본시장 개방으로 훨씬 빨라진 시장의 관성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고환율에 따른 환산수익률 악화로 시작된 외국자본의 이탈이 불안감으로 더 빨라지고, 매도한 원화 자산에 대한 환전수요로 환율은 더욱 높아졌다.

이미 몇 달간 환율의 급변동을 경험한 시장참여자들이 이제 본격적인 환율상승을 상정해 행동하고 핫머니까지 달려들어 환율상승에 베팅하기 시작하면서 이 악순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마침내 리먼의 파산이 공식화되자 환율은 1500원 대까지 수직상승했다.

900원 대이던 환율이 1500원 대까지 치솟게 되면서 한국의 자본시장은 붕괴론이 나올 정도로 망가지게 됐고, 이제는 경상적자 개선을 위한 고환율은 둘째치고 환율 방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여야 할 처지가 됐다. 미국 재무부의 국제경제 환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008년 7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8개월간 무려 570억 달러나 감소했다. 2011년 무역수지 흑자가 321억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럼 리먼사태 때 이 같은 손실이 불가피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다른 나라도 똑같이 리먼사태를 맞았지만, 한국만이 전년동기 대비 환율이 60% 이상 폭등하는 극심한 환율변동을 겪었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환율관리의 기본과 시장의 관성을 간과한 정부 개입이 환율의 변동성을 키워놓았고 이 변동성으로 인해 불필요한 손실이 너무 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환율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명박 정부 초기의 고환율 정책이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을 흐름도를 통해 살펴보자.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시 환율 930원→정부 집권 후 (단위: 천명) 고환율 정책 실시→환율 1100원 대로 급등하면서 수입 기업들의 경영위기 시작→2008년 9월 리먼사태 발생→환율 1500원 대까지 폭등→수입기업들과 키코(KIKO) 등과 외환거래를 했던 수출입기업들 줄도산→가격 경쟁력과 품질이 높아진 현대 및 삼성 등 대기업 수출 및 영업이익 확대, 반면 대기업으로부터 원화결제를 받는 납품업체들은 고환율 혜택을 보지 못함→물가급등 및 내수침체, 재벌에 대한 의존도 및 경제양극화, 수출산업의 고환율 의존도 심화로 정리할 수 있다. 

900원 대의 저환율에도 견디던 한국의 수출산업이 “1100원 대의 환율이 너무 낮아 역마진때문에 수출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환율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됐다. 재벌경제·관치경제의 문제를 안고 있던 한국경제에 고환율 경제 또는 고환율 의존경제라는 폐해가 추가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경기가 심상치 않으니 계속해서 전기·전자, 자동차 등의 수출기업들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고환율을 유지해야 할까? 고환율 정책의 목적과 당위성은 일단 수출 대기업들을 살려 고용과 소비의 증대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고환율 정책의 수혜를 받았던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의 임금상승과 고용은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실제 자동차 산업의 경우 2012년 기준으로 현대차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8900만원(금융감독원 공시기준), 전체 자동차 산업의 고용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7.3%(2012년 10월 8일 기준·한국자동차협회)를 넘어섰다. 

평균 임금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평균 임금 4만9300달러(미국 노동부 2013년 1월 기준·한화 5300만원)을 앞질렀고, 국내 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 246만원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자동차 산업은 2011∼2012년까지 시설투자, 신규고용 등 확대기를 거쳤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에서 추가적인 임금상승(현대·기아차와 협력업체의 임금차는 별개 문제다)과 고용창출은 가능성도 당위성도 크지 않다. 

이 때문에 고용과 소비증대를 위해 고환율의 피해를 입어온 철강·정유·항공 등의 산업에 혜택을 줘야 고용이 살아나고 임금상승을 통한 소비의 증대가 이뤄진다. 또한 고환율로 인한 물가상승과 내수침체가 서민층과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입혀 왔다는 점에서도 고환율 정책의 기조가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 압도적인 상황

고환율 기조의 당위성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우리가 원한다면 고환율 기조 유지는 가능할까? 안타깝지만 이는 더 이상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고환율 기조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일본 등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발행국이 현재와 같은 고강도의 환율정책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국과 일본의 경제상황이 이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먼저 미국의 경우, 현재 7.9%에 이르는 실업률을 5∼6% 수준으로 내릴 때까지 양적완화(유동성을 시중에 푸는 정책)를 계속할 전망이다. 달러가 지금처럼 계속 풀리다 보면 결국 통화로서의 가치하락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부분에서 줄어든 180만 명에 이르는 고용인구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제조업의 경쟁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달러 환율의 인위적인 조작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사정은 더 급하다. 버블 붕괴 이후 회복 기미가 없는 부동산 시장, 한국에 역전당한 전자산업, 정체된 국내총생산(GDP) 등 잃어버린 20년을 찾겠다고 미친 듯이 돈을 풀고 있다. 현재 아베 내각에 대한 일본 내의 지지를 고려할 때 일본의 돈풀기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위적인 고환율 기조의 유지는 더 이상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잘못된 시장개입 때문에 겪었던 실패와 현재의 글로벌 경제환경을 고려하면, 앞으로 정부 환율관리의 방향은 명백하다. 달러와 엔화의 통화량 증가, 경상수지 등 펀더맨털적 요인으로 인한 환율변화는 시장에 맡기고, 다만 원화가 투기자본의 대상이 되거나 외국자본의 급격 유출입 등으로 인한 환율의 급변동을 막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환율의 인위적인 방향에 집착하다 변동성을 확대해 그 후 환율관리에 처절한 실패를 겪었던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환율의 특정 레벨을 고집하기보다는 환율의 변동성 통제에 최우선 역점을 둬야 한다.




이전글        I 월간중앙 3 월호 기고 - '엔저쇼크! 한국경제는 '고환율 중독' 걸렸다'  
다음글        I Economist 기고